생산·운영·품질 영업·사업개발
올리브영 창립 멤버에서 사업가 그리고 멘토가 되기까지
김희정 멘토
30년 동안 한국 H&B(헬스&뷰티) 현장을 지켜온 리테일 1세대, 김희정. “계산만 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지나 있더라고요. 잘 짜인 계획보다 작은 행동 하나가 더 중요하다는 걸, 현장에서 배웠습니다.” 편의점 업계 최초 여성 점장, CJ 올리브영 창립 멤버, 그리고 지금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업가와 후배들을 돕는 멘토. 그녀의 이야기에는 ‘새로운 판을 여는 사람’만이 갖는 실행력, 그리고 두 번째 커리어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현실적인 조언이 담겨 있습니다.
편의점 점장에서 드럭스토어 개척자로
Q. 30년 동안 헬스&뷰티 업계에 계셨습니다. 처음 이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식품공학을 전공했어요. 그런데 실험실에서 하루 종일 앉아 있는 삶이 저랑은 잘 맞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움직이고, 현장에서 부딪히는 일을 하고 싶었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유통업에 관심을 갖게 됐고, 처음에는 편의점에서 점장까지 맡게 됐어요. 당시만 해도 편의점 업계에 여성 점장이 거의 없어서, 제가 ‘편의점 업계 최초 여성 점장’이기도 했습니다. 그 경험들이 재미있었어요.매장을 운영하면서 “상품을 어떻게 구성해야 잘 팔릴까?” “손님은 어떤 동선으로 움직일까?”를 몸으로 배웠거든요.
Q. 올리브영 창립 멤버로 참여하셨죠.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처음”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국에 드럭스토어라는 개념이 아예 없던 시절이었어요. ‘한국식 드럭스토어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를 두고 일본에 가서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공부하고, 매일 밤 팀원들과 토론을 했습니다.1999년 11월 6일, 신사점 1호점을 오픈하기 전 며칠은 매장에서 박스를 깔고 자면서 준비했어요. 이 상품을 어디에 어떻게 놓아야 처음 들어오는 고객이 “아, 이게 드럭스토어구나” 하고 느낄 수 있을지, 그 ‘첫인상’을 만들기 위해 진열 하나, 매대 하나까지 끝없이 고민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Q. 드럭스토어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던 시기였습니다. 올리브영만의 아이덴티티를 만들기 위해 어떤 시도들이 있었나요?
초기에는 외국 드럭스토어 모델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어요. 그런데 한국의 약국 환경, 상권 구조, 고객 인식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약국과 드럭스토어를 결합한 형태도 시도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약국·드럭스토어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죠. 결국 그 모델은 과감히 포기했습니다.그다음에는 ‘헬스&뷰티스토어’라는 이름으로 방향을 잡았다가, 2008년에는 허민호 대표님이 오시면서 헬스 카테고리 비중이 낮은 시장 상황을 보고 다시 ‘뷰티멀티샵’으로 정체성을 재정립했습니다. 드럭스토어 → 헬스&뷰티스토어 → 뷰티멀티샵까지, 계속해서 아이덴티티를 바꾸며 ‘고객이 원하는 것’에 맞춰간 과정이 지금의 올리브영을 만든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Q. 왓슨스 등 여러 경쟁사가 있었음에도 국내 시장에서 올리브영만이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CJ의 ‘오랜 기다림’과 ‘현지화’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당시 CJ는 1년에 매장 하나씩, 정말 천천히 오픈했습니다. 10년 가까이 적자를 감수하면서 “한국 시장에서 드럭스토어가 어떻게 자리 잡아야 하는가”만 고민했죠. 그 과정에서 회장님, 부회장님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고, 창립 멤버 몇 명이 오랫동안 붙어서 컨셉과 매대, 브랜드 구성을 계속 바꿔가며 실험했습니다.왓슨스 등이 해외 모델을 그대로 들여온 곳들과 달리, 우리는 한국 고객에게 맞게 ‘현지화’를 했다는 점이 가장 달랐습니다. 고객이 해외에 나가서 사던 제품들을 한국에서도 똑같이, 편하게 살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 우리가 팔고 싶은 걸 파는 게 아니라, 고객이 사고 싶은 걸 우리 가게 안에서 다 찾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그게 지금의 올리브영이 된 힘이었습니다.
Q. 여러 직무 중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커리어는 무엇인가요?
역시 처음 맡았던 MD 시절입니다. 그땐 건강식품 시장도 작았고, 화장품도 ‘왕도매’라고 불리던 시대라 지금처럼 브랜드가 다양하지 않았어요. 매대를 채우는 일 자체가 큰 도전이었고, 화장품·건강식품 회사들도 저희에게 제품을 선뜻 맡기려 하지 않았습니다.그럴수록 더 치열하게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어떤 상품을 ‘미끼 상품’으로 매대에 배치해야 고객이 눈길을 멈출지, 어떤 구성이 유입과 구매를 동시에 만들어내는지, 매대와 진열 하나하나를 전략적으로 설계하던 시절이 저에게는 가장 재미있고 자랑스러운 시간입니다.
대기업 임원에서, 나만의 비즈니스로
Q. 올리브영 이후, 인삼공사에서 건강식품 브랜드를 새로 만들기도 하셨죠. 그 과정은 어떠셨나요?
한국인삼공사에서는 건강식품 신규 브랜드를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이전에 했던 방식처럼 “연구개발 → 제품 개발 → 마케팅”의 순서가 아니라, 연구 개발자, 제품 개발자, PM, 디자이너, 브랜드 담당자를 모두 모아 컨셉부터 함께 고민하는 방식을 시도했어요. 6개월 동안 수없이 회의를 하며 제품을 만들고, 매장까지 풀 세팅해 런칭했습니다.제가 주도적으로 브랜딩과 제품 개발, 마케팅까지 하나의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간 경험이라 굉장히 의미 있었죠. 하지만 3년 안에 눈에 띄는 실적을 내지 못했고, 재편 과정에서 그 브랜드가 정리되면서 저에게는 실패와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Q. 퇴직 후에는 완전히 다른 카테고리로도 도전하셨다고요.
네, 처음에는 “헬스&뷰티는 이제 그만”이라고 생각했어요. 프라이팬을 수입해서 팔기도 하고, 백화점에 새로운 상품을 입점시키기도 하고, 고체 치약 같은 새로운 제품도 유통해 봤습니다. 그런데 결국,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로 다시 돌아오게 되더라고요. 건강식품 개발, H&B 유통은 제가 가장 빠르게 판단하고 실행할 수 있는 영역이었거든요. 그래서 “사업을 시작할 땐, 억지로 다른 걸 찾기보다 잘할 수 있는 걸 먼저 하는 게 좋다”는 걸 몸으로 깨닫게 됐습니다.Q. 직장인과 사업가. 두 역할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라고 느끼셨나요?
직장인은 주어진 목표 안에서 “어떻게 하면 이걸 잘할까?”를 고민합니다. 매출 목표에 맞게 비용을 짜고, 조직의 규칙과 상사·동료의 의견 안에서 움직이죠.사업가는 완전히 다릅니다. 일단 내가 주도합니다. 시장 상황이 달라지면, 나부터 바뀌어야 하고요. 사고의 폭을 훨씬 넓게 가져가야 합니다. 하나의 사업만 보는 게 아니라, “이걸 누구와 연결할 수 있을까?” “어떤 네트워크와 융합하면 더 좋은 구조가 될까?”를 계속 생각해야 하죠. 그게 가장 큰 차이입니다.
Q. 이제는 직접 매출과 비용을 책임지는 사업가이신데요. 리스크가 있음에도 계속 도전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나요?
가장 큰 힘은 “내가 책임진다”라는 감각이에요. 결정을 내리는 사람도, 그 결과를 감당하는 사람도 결국 저 자신이죠. 그래서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배려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할 땐 그 사람의 상황, 리스크도 함께 보게 되고요.리스크가 있지만, 온전히 제 선택과 책임으로 움직이는 삶이라는 점에서 사업은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Q. ‘저스트유’를 7년째 운영하고 계십니다. 회사를 꾸준히 성장시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욕심을 내지 않았던 점이 가장 큽니다. 사업을 하다 보면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해볼까?” 하는 유혹이 많아요. 그렇게 확장하다가 마무리를 못 하고 끝나는 경우를 정말 많이 봤습니다.저는 지금 하고 있는 거래처, 지금 진행 중인 사업에 최대한 집중했습니다. 그 신뢰가 쌓이다 보니 기존 거래처가 다른 곳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 새로운 기회들이 자연스럽게 들어오더라고요. 욕심 대신 집중. 그게 제가 7년 동안 사업을 유지할 수 있었던 힘이었습니다.
Q. 지금 ‘저스트유’의 차별화된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결국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30년간의 직장 생활, 7년간의 사업 경험. 대기업과 현장, 양쪽을 다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무엇부터 봐야 하는지' '대기업과 거래할 때 어떤 구조를 이해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을 실전적으로 알려드릴 수 있거든요. 그 경험 자체가 저스트유의 경쟁력입니다.
계산하다가 시간만 흘러가는 사람들에게
Q. “계산하다가 시간만 흘러간다”라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계획보다 ‘행동’이 더 중요하다고 보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주변에서 정말 많이 봤어요. 계속 고민하고, 시뮬레이션만 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는 경우요. 특히 직장 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은 이전의 성공 경험, 직함, 커리어에 갇혀서 실패를 더 두려워합니다.그런데 제 생각에는, 그동안의 커리어는 잠시 내려놓고 “내가 사회에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간다면 못할 게 뭐가 있지?”라고 생각해 보는 게 필요합니다. 머릿속에서만 재고 있으면 자신감도 같이 떨어져요.
작은 것부터라도 ‘한 번 해보는 것’. 거기서부터 기회가 열리고, 방법도 보이고, 사람도 만나게 됩니다.
Q. 마지막으로 도전을 망설이는 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으신가요?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너무 잘 짜인 계획을 세우려 하기보다 “행동하면서 생각한다”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믿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잘 모를 때가 많아요. 직장에 묶여 살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돌아볼 틈이 없거든요. 하지만 분명히 잘할 수 있는 것, 좋아하는 것이 있습니다.“이건 내가 한 번 해봐야겠다”라는 마음이 들었다면, 그건 이미 시작해도 된다는 신호일지 몰라요.
‘성공은 거창한 전략보다 사소한 실행에서 시작된다.’ 김희정 멘토는 여전히 자신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잘 짜인 생각보다, 한 번 해보는 행동이 더 중요해요. 생각만 하다 보면, 인생의 5년, 10년은 너무 빨리 지나가거든요.”
그래서 그녀는 오늘도, 계산만 하며 망설이는 누군가에게 작은 한 걸음을 먼저 내디뎌 보라고 말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