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유통 조직을 설계한 기획자에서,
사람과 회사를 잇는 커리어 전략가로

강헌서 멘토



“20년간 대형 유통 조직을 설계해온 기획자에서, 사람과 회사를 잇는 헤드헌터로 전환한 커리어 전략가.”
준비된 게 아무것도 없던 ‘초기 롯데마트’에서 조직과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새로운 가전 전문점 모델까지 런칭했던 기획자. 그리고 지금은, 기업과 사람을 연결하는 헤드헌터로 두 번째 커리어를 열어가고 있는 강헌서 멘토.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던 시절’에 몸으로 배운 기획과 시스템, 숫자와 사람 사이에서 고민해 온 리더십, 그리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현실적인 조언을 들어봅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인터뷰 중인 강헌서 멘토/리라랩


롯데마트 1세대의 기획

Q. 롯데마트 초기에 합류하셨죠. 당시 회사 분위기는 어땠나요?

제가 롯데마트에 합류한 건 1999년이었습니다. 그때 롯데마트는 지금처럼 독립 법인이 아니라, 롯데백화점 안의 하나의 사업본부 단위로 아주 작게 출발한 상태였어요. 말 그대로 “모든 게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조직도, 시스템도, 프로세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걸 이제부터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죠. 백화점이라는 모회사의 틀 안에서 시작하다 보니 기본적인 회사 시스템은 백화점의 방식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는데, 실제 할인점 비즈니스는 구조도, 공급업체도, 영업 방식도 백화점과는 매우 달랐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백화점에서 가져온 프로세스를 하나씩 벗겨 내는 것이 저희의 첫 번째 일이기도 했어요.

Q.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던 시절”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그때 직접 설계하신 시스템이나 프로세스 중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 시기는 정말 ‘R&R(Role & Responsibility)을 쓰는 것’부터 시작이었어요. 어떤 조직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각 조직의 역할과 권한은 어디까지인지, 의사결정 라인은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이런 것들을 백지 상태에서 그려야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급했던 건 세 가지 축이었어요.
1. 상품 소싱 – 어떤 상품을, 어떤 구조로 들여올 것인가
2. SCM·물류·재고 관리 – 상품이 어떻게 매장까지 흘러가고, 어떻게 관리될 것인가
3. 점포·매장 운영 – 매장에서 어떻게 전개하고, 고객에게 어떤 경험으로 판매할 것인가
이 세 가지가 정리가 되지 않으면 “매출”이라는 결과를 만들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팀장들과 끝없이 논의하면서 조직 구조와 R&R을 정의하고 물류센터 체계와 SCM 시스템을 설계하고 점포 단위 영업 시스템을 하나씩 만들어 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당시에는 굉장히 큰 규모였던 물류센터 오픈과 SCM 시스템 구축이 이뤄졌고, 그게 이후 롯데마트 성장의 기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Q. 롯데마트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무엇이었나요? “이때 정말 재밌었다”라고 느끼셨던 순간이 있다면요?

롯데마트가 어느 정도 성장한 뒤 이제 다음 성장동력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할인점 사업은 계속 가져가되, 그 위에 새로운 축을 하나 더 올려야 했던 거죠. 그때 나온 답 중 하나가 ‘가전 전문점’이었습니다. 이미 국내에도 가전 전문점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가 가장 큰 고민이었고요. 여러 논의 끝에, 일본 도심형 가전 전문점을 벤치마킹해서 국내에 새로운 형태의 가전 매장을 도입해 보자는 방향을 정했습니다.
관련 인력을 선발하고, 저도 그 팀에 합류해 약 두 달간 일본 현지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상품 구성, 고객동선, 체험방식 그리고 현지매장의 영업·운영 철학까지 현장에서 직접 보고, 배우고, 메모하면서 “한국형 모델”을 구상하기 시작했죠.

Q. 국내에 들여와서 구현하신 모델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기존과 가장 큰 차이는 “체험”이었습니다. 당시 국내 대형마트의 가전 매장은 대부분 TV, 냉장고, 세탁기 같은 대형 가전 중심이었고 카메라나 핸드폰 같은 디지털 기기들은 유리장 안에 전시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고객이 직접 만져볼 수 있는 기기는 많지 않았고요.
저희가 시도한 것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핸드폰, 카메라, 소형 디지털 가전 중심의 매장 구성으로 고객과 상품 사이를 가로막던 유리 진열대를 과감히 제거하고 모든 상품을 직접 만지고, 테스트해 볼 수 있게 설계 했습니다. 매대마다 실제로 작동하는 기기를 놓고 고객이 버튼을 눌러보고, 사진을 찍어보고, 성능을 직접 느껴볼 수 있게 한 거죠.
기존에 없던 형태였기 때문에 오픈과 동시에 업계의 관심도 많이 받았고, 무엇보다 수치로도 증명이 되었습니다. 기존 가전 매장 대비 10배, 많게는 20배 가까운 매출 효과가 나왔고, 점포를 하나씩 오픈해 가는 과정 자체가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재밌고 뿌듯했던 프로젝트였습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인터뷰 중인 강헌서 멘토/리라랩


신입사원에서 상무까지 리더로 성장한 이야기

Q. 롯데마트에서 사원에서 상무까지 20여 년을 함께하셨습니다. 본인에게 가장 ‘성장했다’고 느껴진 시기, 전환점은 언제였나요?

돌이켜 보면, 사실 매 단계가 전환점이었습니다. 그래도 크게 두 번을 꼽으라면 ‘과장 시절’과 ‘팀장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과장 시절은 “아, 기획이라는 업무가 이런 거구나”를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그전에는 솔직히 말하면 “주어진 일을 그냥 열심히 하는 단계”였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롯데마트라는 조직에 지금 어떤 기획이 필요할까” “내가 하는 일이 회사 전체에 어떤 영향을 줄까” 를 고민하게 되었고, 부족한 이론도 공부하고, 현장에서 나온 결과를 다시 피드백 받으면서 기획자라는 직업의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팀장이 된 이후는 또 다른 전환점이었고요. 그전까지는 “주어진 업무를 잘 수행하는 사람”이었다면, 팀장이 된 뒤에는 ‘일을 직접 만들고 방향을 정하는 사람’ ‘성과를 책임지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후배를 키워야 하는 사람’ 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하는 방식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어요. 어려운 시기였지만, 그 시기를 잘 지나온 덕분에 훗날 상무까지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Q. 기획·전략 부서는 냉정한 판단이 요구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사람 중심의 리더십’과 ‘숫자 중심의 판단’ 사이에서 갈등하신 적이 있었나요?

항상 그 두 가지 사이에서 고민했습니다. 기획·전략 부서는 어떻게 보면 ‘회사의 편’에 서 있는 부서입니다. 회사 전체의 성과, 효율, 비용 구조를 보고 조직의 방향을 제안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숫자를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성과는 숫자로 드러나기 때문이죠.
다만, 숫자만 보게 되면 결국 사람을 잃게 됩니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어떤 눈으로 보느냐가 리더에게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평가 시즌이 가장 고민이 많았어요. ‘왜 이 사람이 이런 결과를 낼 수밖에 없었는지’ ‘어떤 요인이 성과를 막았는지’ ‘다음 해에는 어떻게 하면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그 부분까지 고민하면서 저성과자를 단순히 잘라내기보다 다음 해에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게 도와줄 방법은 없을까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Q. 공정한 평가·보상 체계를 만들기 위해 가장 신경 쓰셨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특히 정량적 지표가 어려운 부서는 어떻게 평가하셨나요?

평가에 대한 답은 사실 질문 안에 있습니다.“나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불리하게 평가받지 않는가?” 이 질문에 ‘그렇다’고 느끼는 순간, 평가 시스템에 대한 신뢰는 무너집니다. 그래서 저는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을 만드는 데 가장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영업 부서는 매출·이익 등 수치가 명확하니 기준을 세우기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하지만 기획·지원·관리 등 수치화가 어려운 부서는 과거에는 회사 전체 실적에 따라 일괄적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문제는 열심히 일하고 성과를 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같은 평가를 받는다는 점이었죠. 그래서 꼭 필요한 일이 각 부서의 R&R(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우리 부서의 핵심 역할과 그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잘해야 하는지, 그 과정을 어떻게 정성·정량적으로 볼 것인지 이 질문을 제가 위에서 던지는 방식이 아니라, 각 부서가 스스로 “우리 부서의 롤은 이것입니다”라고 정리해서 가져오게 했습니다. 그 기준을 가지고 “적정한지, 수정할 부분은 없는지”를 함께 논의했고, 그렇게 서로 합의된 기준을 평가 지표로 삼았습니다. 물론 100% 만족스러운 평가는 세상에 없겠지만, 최소한 열심히 한 사람이 그만큼 인정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Q. 효율화·구조조정이라는 단어 뒤에는 항상 ‘사람의 감정’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괴로웠던 순간은 없으셨나요?

많았죠. 구조조정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사람들에게 상처로 들리는 단어잖아요. 회사는 비 효율을 줄이고, 낭비되는 비용을 줄이고, 성장이 막힌 부분을 손질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자리를 옮겨야 하고, 누군가는 회사를 떠나야 하는 상황도 생기죠. 경영 입장에서 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일 때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 편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기획 부서에 있을 때 제가 스스로에게 했던 다짐은 이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구조를 만들고, 대안을 찾는 게 기획 부서의 첫 번째 역할이다.” 막다른 골목에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하게 되는 상황이 아니라 그 전에 조금이라도 다른 선택지가 나오도록 시스템과 구조를 설계하는 것.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인터뷰 중인 강헌서 멘토/리라랩


두 번째 커리어, 기획자에서 헤드헌터로

Q. 오랜 기업 생활을 마치고, 지금은 헤드헌터로 일하고 계십니다. 기획·전략에서의 경험이 현재 일에 어떤 방식으로 도움이 되나요?

기획·전략 업무는 회사 전체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연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업, 물류, 조직, 재무, 인사 회사가 굴러가기 위해 필요한 거의 모든 영역을 직·간접적으로 들여다보게 되죠. 그 덕분에 지금은 어떤 회사에서 인력을 요청해 오면 이 회사가 어떤 구조인지 이 포지션이 조직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자리인지를 비교적 빨리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새로운 회사를 찾는 분들에게도 이 회사가 어떤 비전과 구조를 가진 곳인지, 들어가면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드릴 수 있고요.
결국, 제 역할은“회사에는 가장 적합한 인재를, 구직자에게는 가장 맞는 자리를 연결해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기획·전략 경험이 그 연결고리를 조금 더 정교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Q. 경영자로서 사람을 채용할 때와 헤드헌터로 사람을 연결할 때, 관점의 차이를 느끼신 적이 있나요?

분명히 있습니다. 회사는 적은 비용으로 좋은 인재를 원하고 구직자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조건과 더 나은 자리를 원합니다. 이 둘은 자연스럽게 어긋날 수밖에 없어요. 회사 입장에서는 “조금 더 완벽한 인재”를 원하고, 구직자는 “조금 더 좋은 조건”을 원하니까요. 그 사이에서 현실적인 접점을 만드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회사에는 “이 분이 왜 이 포지션에 적합한지, 어떤 가능성과 가치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설명드리고, 구직자에게는 “이 회사가 어떤 방향을 보고 있고, 당신이 들어가면 어떤 역할로 성장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안내하려고 합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인터뷰 중인 강헌서 멘토/리라랩

사람과 조직으로 고민하는 기업가들에게

Q. 중소기업은 데이터 기반 경영이나 시스템 구축이 쉽지 않습니다. 이를 잘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처음에는 정말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두 가지를 먼저 말씀드립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하는 사업이 정확히 무엇인지 정의하기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팔고 고객은 누구이며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벌고 있는가” 이게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시스템이나 데이터를 이야기하는 건 순서가 조금 바뀐 거라고 생각해요.
두번째는 기준을만들고 정리해서 표준화하기 입니다. 갑자기 모든 시스템을 도입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같은 방식으로 반복할 수 있게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 업무의 표준화입니다. 사업을 하다 보면 예상 못한 문제도, 돌발 상황도 끊임없이 생깁니다. 그래서 더더욱 기준이 필요합니다.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에 맞게 업무를 정리한 다음에 그 기준을 시스템으로 옮기는 순서를 밟으면 조금 느려 보여도, 훨씬 단단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빠르게 성장하는 젊은 기업가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사람과 조직’입니다. 선배로서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사람과 조직에 대한 고민은 평생 가는 고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아직 해결책을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다만 한 가지,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다면 이겁니다. “모든 사람을 만족 시키려 하지 마라.”
경영자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마음이 너무 앞서다 보면 정작 성과를 내야 할 순간에 결정을 못 하는 경우가 많아요. 좋은 경영자는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필요할 때는 엄격함을 가져갈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결정일 수 있지만, 조직 전체의 건강과 성장에는 꼭 필요한 선택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후배 경영자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사람을 아끼되, 성과를 내야 할 때는 리더로서의 결정을 피하지 마세요.” 그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어쩌면 평생 이어질 리더십의 여정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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